팍팍한 생업에 쫓겨 늘 뒷모습만 보여야 했던 부모님, 그리고 가끔 과한 약주로 고집을 피우던 서툰 아버지. 어린 시절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그 모습들이, 내가 한 가정의 가장이 되고 자녀를 키우며 비로소 '부모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버겁고 나약한 청춘의 무게'로 다가옵니다. 중년의 전두엽이 선사하는 자아 통합과 용서의 심리학을 깊이 있게 조명합니다.
안녕하세요. 구름의 추억입니다. 인생의 반환점을 훌쩍 넘어 4050이라는 묵직한 나이에 도달하고 보니, 문득 세상을 바라보는 해상도가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졌음을 느낍니다. 20대와 30대의 치열했던 시기에는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느라 제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데만 급급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거울 속에 비친 희끗희끗해진 제 머리카락과 깊어진 눈가 주름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아주 오래전 제 기억 속 부모님의 젊은 시절 얼굴을 조용히 겹쳐보게 됩니다.
제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서 부모님은 늘 팍팍한 생업을 위해 전쟁처럼 바쁘게 움직이셨습니다. 따뜻한 저녁 식탁에 마주 앉아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는 일은 좀처럼 허락되지 않았고, 그나마 저녁 늦은 시간에 잠깐 지친 뒷모습을 뵈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는 상황이 더 여의찮아져서 주말 저녁에나 겨우 온 가족이 잠깐 얼굴을 마주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제 어린 마음에는 늘 바쁘고 어딘가 멀게만 느껴지던 부모님에 대한 묘한 거리감과 야속함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나 제 기억 한편에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아버지는 가끔 바깥에서 약주를 과하게 드시고 들어오시는 날이면, 평소와 달리 알 수 없는 고집을 피우시곤 했습니다. 누가 봐도 몸을 가누기 힘들 만큼 취하셨고 건강이 염려되는 상황이라 어머니와 가족들이 걱정 어린 잔소리를 쏟아내도, 아버지는 특유의 억양으로 "나는 괜찮다, 아무 문제없다"라며 고집을 꺾지 않으셨습니다. 어린 제 눈에 비친 아버지의 그런 모습은 그저 앞뒤가 꽉 막힌 어른의 이해할 수 없는 억지이자, 가족들을 힘들게 하는 답답함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야속하기만 했던 그 시간들은 제가 결혼을 하고, 한 가정의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야 하는 가장이 되고, 무엇보다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완전히 다른 의미로 제 가슴을 강타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매일 숨 막히게 쏟아지는 직장의 업무와 스트레스, 한 달이 멀다 하고 날아오는 대출 이자와 생활비의 압박, 그리고 어떻게든 내 아이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키워내야 한다는 짓눌리는 책임감 속에서 하루를 버텨내다 보니 문득 벼락처럼 하나의 진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 시절 늘 등만 보여야 했던 나의 부모님, 술에 취해 "나는 괜찮다"며 센 척 고집을 피우셔야만 했던 나의 아버지 역시 태어날 때부터 강철로 무장된 완벽한 어른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들 역시 지금의 나처럼 하루하루가 너무나 버겁고 서툴렀으며, 두려움에 떨면서도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버텨내야만 했던 한 명의 연약하고 처절한 청춘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신상에서 내려온 부모와 중년의 전두엽이 만드는 공감의 기적

발달심리학과 뇌과학에서는 우리가 나이가 들어가며 부모를 새롭게 이해하게 되는 이 과정을 매우 중요하고 숭고한 뇌의 성숙 단계로 설명합니다. 어린아이의 뇌에게 부모란 생존을 책임지는 절대적인 존재, 즉 흠결이 없어야만 하는 '완벽한 신'과도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 시절의 뇌는 부모의 작은 실수나 나약한 모습, 혹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술에 취한 고집 등)을 마주하면 극심한 혼란과 상처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중년에 접어들면 뇌의 지휘 계통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단편적인 흑백 논리로 세상을 판단하던 뇌의 회로가, 수십 년간 쌓인 숱한 실패와 좌절, 인간관계의 복잡성을 처리하며 엄청나게 고도화되는 것입니다. 특히 타인의 입장을 조망하고 맥락을 이해하는 전두엽의 기능이 정점에 달하면서, 우리는 비로소 내면의 깊은 곳에 신으로 모셔두었던 부모를 끌어내려 '나와 똑같은 한 명의 불완전한 인간'으로 다시 마주하게 됩니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자아 통합'의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부릅니다. 완벽해야만 했던 부모가 실은 무너질 것 같은 두려움을 숨기고 있었음을 이성적으로 추론해 내는 뇌의 능력입니다. 제가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의 무게를 온몸으로 겪어보고 나서야, 과거 아버지가 술기운을 빌려서라도 "나는 무너지지 않았다, 나는 괜찮다"라고 자신을 다잡아야 했던 그 고단한 방어기제의 본질을 뇌가 비로소 해독해 낸 것입니다.
나는 괜찮다던 아버지의 술잔 뒤에 숨은 편도체의 절박함
우리의 뇌 깊숙한 곳에 있는 편도체는 위협과 불안을 감지하는 알람 센터입니다. 과거 팍팍했던 고도성장기 시대에 한 가정의 생계를 온전히 책임져야 했던 아버지들의 편도체는 아마도 24시간 내내 쉬지 않고 날카롭게 경보를 울려대고 있었을 것입니다. 경제적 위기, 직장에서의 모멸감,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불안감이 매일같이 목을 조여왔겠지만, 그 시절의 가장들은 가족 앞에서 단 한 번도 그 두려움을 솔직하게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습니다.
두렵고 힘들다고 말하는 순간 든든한 울타리로서의 권위가 무너질 것이라는 극도의 불안감이 그들의 뇌를 지배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극도로 활성화된 편도체의 비상벨을 잠재우기 위해 가장 손쉽고 강력한 억제제인 알코올에 기대어야만 했을 것입니다. 술에 취해 이성의 끈이 느슨해진 틈을 타서야, 가족들의 쏟아지는 걱정 앞에서도 역설적으로 "나는 끄떡없다"라며 스스로에게 절박한 최면을 거셨던 것입니다.
어린 시절의 저는 그 억지가 징그럽게도 싫었지만, 중년의 가장이 되어 스트레스에 잠 못 이루고 가끔은 차가운 소주 한 잔으로 목구멍의 체증을 밀어내야만 잠들 수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할 때면, 그 옛날 아버지의 그 붉어진 얼굴 뒤에 숨어있던 무거운 외로움이 사무치게 다가와 가슴 한구석을 먹먹하게 만듭니다. 그건 고집이 아니라, 쓰러지지 않기 위한 처절한 버팀이었습니다.
완벽하지 않은 세대의 사슬을 껴안으며 마주하는 화해의 웰니스
과거 부모님의 서투름과 나약함을 있는 그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결코 그들의 모든 행동을 맹목적으로 미화하거나 변명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나의 부모 역시 그 시대를 힘겹게 뚫고 나오느라 여기저기 상처 입고 피 흘리던, 서툴고 불완전한 한 명의 청춘이었음"을 조용하고 쓸쓸하게 인정하는 과정입니다.
이 처연한 인정과 수용(Acceptance)이 일어날 때, 우리 뇌에서는 엄청난 치유의 화학작용이 일어납니다. 과거의 상처를 움켜쥐고 있던 긴장된 시냅스들이 스르르 풀리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낮아지며, 타인과 나 자신을 향한 깊은 연민의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분비됩니다. 과거의 부모를 진정으로 용서하고 이해하는 순간, 역설적으로 '완벽한 부모가 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지금의 내 모습'까지도 온전히 끌어안고 용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저는 제가 아이에게 쏟아붓는 사랑이 가끔은 서툴고 넘쳐서 실수를 하더라도, 너무 깊이 자책하지 않으려 합니다. 제가 완벽하지 않듯 저의 부모도 완벽하지 않았고, 훗날 내 아이 역시 부모인 저의 숱한 흠결과 서투름을 시간이 흘러 중년의 너그러운 시선으로 이해해 줄 날이 올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 밤, 조용히 책상에 앉아 낡은 앨범 속 젊은 시절 아버지의 사진을 오래도록 들여다봅니다. 무뚝뚝한 표정 뒤로 얼마나 많은 눈물과 불안을 삼켜내셨을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팍팍한 세상 속에서 거친 등만 보여주어야 했지만, 그 넓은 등 뒤에서 제가 이만큼 안전하게 자라날 수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시대를 건너 저와 똑같은 무게의 청춘을 견뎌내셨을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이제야 그 서툴고 눈물겨웠던 나약함을 깊이 이해하며, 오늘 하루도 묵묵히 삶의 무게를 버텨내고 있는 세상의 모든 중년 가장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잔을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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